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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북미 정상회담, 왜 이렇게 늦었을까 정치, 사회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높았던 기대치에는 좀 못미친듯 하지만 '전쟁을 할 수도 있다'고 으르렁거리던 두 정상이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짤방 이미지로 올린 동영상에 북미 두 정상의 만남을 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표정이 나온다. 그 미소가 모든 것을 말해 준다. '다행이다'라는 안도의 표정이 아니라 '거 봐, 만나니까 보기 좋잖아'하는 흐뭇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 말은 사전에 대부분의 조율이 끝나 있었고, 그걸 문대통령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일단 그 기사부터 보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44475&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top1&CMPT_CD=E0026M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북미 정상이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을 국무위원들 및 참모진들과 함께 봤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트럼프 두 정상이 만나 악수하는 순간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보았고 옆에 있는 이낙연 국무총리는 가볍게 손뼉을 쳤다. "


이 시점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방해하려는 세력들이 어김없이 지적하는 'CVID가 명문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방해 세력들과 언론들이 주구장창 떠든 'CVID'라는 것은 단지 선언적 구호일 뿐이다. 그들도 저 말 뒤에 '어떻게 비핵화할 것인가가 관건이다'라는 말을 꼭 덧붙였다. 역시 핵심은 '북한이 비핵화할 것인가'와 그것을 '미국이 믿어줄 것인가'에 있었다. 이번에 두 정상이 만났다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트럼프가 '믿었다'는 뜻이다.

트럼프가 했다는 말이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한 게 뭐냐?"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힌 게 지금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1990년대 말에 이미 전개되었다. 북미 수교까지 되려고 하던 마당에 판이 깨진 것은 공화당의 아들 부시의 당선때문이었다. 그 이후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북한을 믿을 수 없는 존재로 만들기에 열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의 관점은 한반도를 자신들의 통제 가능 범위 안에 두는 것이었지, 한반도의 평화가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미국 정계의 이단아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트럼프의 행보를 보면 누가 뭐라고 하든 미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런 트럼프의 눈에 남한에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사드를 배치하고, 한미합동군사작전을 하는 것 등이 모두 쓸데없는 비용 낭비로 보였다. 즉, 트럼프에게 한반도 상황은 '벌거벗은 임금님'이었다. 그래서 트럼프는 여러달 간의 탐색 끝에 결국 김정은을 만나기로 했다. 또 그렇게 만남으로써, 트럼프는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그러면 트럼프 이전의 미국 지도자들은 왜 그러지 못했을까?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겠다.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즐긴 집단이 미국 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모두가 알다시피 일본이다. 다음 기사를 보자.

http://v.media.daum.net/v/20180612154054414?rcmd=rn

"북미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일본 주요 각료들이 “결코 경계심을 풀어서는 안 된다” 등의 입장을 잇따라 내놨다."

한반도 긴장 완화에 일관되게 고추가루를 뿌려온 일본의 의도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도 한반도가 자신들이 직접 통제하지는 못하더라도 미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마 일본에 유리하도록 통제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고 그런 의도를 숨기려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을 돌고 돌아왔지만, 핵심은 북한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기 위해 한반도 상황을 '북한의 위협으로 부터 미국이 보호해 주어야 한다'로 규정해 놓은 '자칭 보수들(조중동 찌라시 류, 자한당 계열의 정치인들, 그리고 그들의 농간에 휘둘리는 인간들)의 흉계에 있었다.

남북 정상에 이어, 북미 정상까지 만남으로써 오랫동안 유지되어 오던 한반도에서의 이 황당한 구도가 드디어 깨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평화'라는 상징적 구호 뒤에서는 '경제적 번영'이라는 실질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