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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 제리 포더 독서



진화론은 여러 갈래로 부터 공격을 받았다. 그 공격의 최선봉에 있는 것은 종교다. 그 다음으로는 서양의 지적 전통에 해당하는 철학일 것이다. 물론 과학 내부에서의 반발도 많았다. 과학 내부에서의 반발은 과학의 속성이 검증과 반증을 통해 발전해 가므로 자연스럽게 도태되지만 종교와 철학은 스스로를 과학과 별개의 영역으로 생각하므로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는 무관하게 자신들 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다.

현대 심리학은 인간의 '정신'도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했고, 진화심리학에 이르는 과정에서 '정신'도 결국은 뇌의 작용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그 말은 정신과 육체는 별개라는 심신이원론을 바탕으로 성립된 철학은 근본적인 오류 위에 성립해 있다는 말이다. '상대성 이 후 백년'에서 음악 영역을 담당한 한 저자는 "음악이 형식화되면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그 결과 음악은 지식인의 전유물에 그치게 된다."라고 했다. 과학이 규명한 심신일원론을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철학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지식인들의 전유물'로 전락했다. 그런 철학의 모습을 다음 책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 제리 포더는 심리인지철학 분야에 수여되는 제1회 장니코상을 수상한 철학자이자 인지심리학자로 소개된다. 자신들 만의 리그에서는 대가로 통한다는 이야기다. 이 책의 감수자가 쓴 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그것을 확인시켜 준다.
"그는 우선 힐러리 퍼트넘Hilary Putnam 등과 함께 심리철학의 주요 이론 중 하나인 기능주의functionalism를 제안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기능주의는 심리적 속성이 신경생리적 속성과 같은 물리적 속성보다 상위 수준의 기능적 속성들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심리적 속성이 물리적 속성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물리주의와 뚜렷이 대비된다."
"포더의 입장을 최종적으로 받아들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이 책은 철학적, 개념적, 논리적 사고가 여러 분야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과학은 반증을 거쳐 살아남은 이론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철학은 그런게 없다. 오직 사변적 추론에 의한 가설이 어느 시대에는 주류였다가 시간이 흐르면 다른 가설에 주류 자리를 내어주곤 한다.

사변적 추론에 의존하기는 저자도 마찬가지다. 다음 구절들은 증명이 아니라 추론의 연속에 의해 현재의 주장에 도달해 있다는 저자의 생각을 보여준다.
"친숙한 여러 이름들(이요르만이 아니라 촘스키, 다윈, 흄, 칸트, 플라톤, 튜링 등)이 곳곳에 나오는데, 그들의 견해를 거의 정확하게 전달했다면 두말할 필요없이 대단히 기쁠 것이다."
"노예 소년이 기하학을 어떻게 아는지, 그 아이가 도대체 어디에서 그것을 배울 수 있었는지에 대한 플라톤의 물음은 화자/청자가 그들의 언어를 어떻게 아는지 그리고 도대체 어디에서 그것을 배울 수 있었는지에 대한 촘스키의 물음과 거의 매한가지다. 내 생각에 중요한 용어들은 서로 명확히 일치한다."
"합리주의자들은 거의 자명하게 선천론자들이다. 반면에 심적 과정의 본질에 대한 합리주의의 합의는 그보다 불투명하다는 인상을 풍긴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합의가 존재하고, 그 합의는 칸트가 요약한 것으로 여겨지며, 뿌리는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가고, 오컴의 윌리엄William of Occam을 비롯한 스콜라철학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부분들의 정체성과 배열은 표상의 본질적 특성에 속하는 반면, 배의 색깔은 큰가시고기의 본질적 특성에 속하지 않는 다. 물고기의 정체성은 일반적으로 배의 색깔 변화보다 지속적이지만, 문장의 정체성은 그 통사론이나 논리 형식보다 결코 지속적이지 않다."
"우리는 어떤 인지 내용물이 선천적인가에 대한 결론을 자극의 빈곤 이론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합리주의 인식론의 한 갈래를 보았다. 그리고 심적 상태는 논리 형식을 가질 수 있다는 개념과, 그 논리 형식은 심적 상태의 인과력을 결정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개념을 재건하는 합리주의 심리학의 한 갈래도 보았다. 그것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가정들 덕분이다. 즉 심적 표상에는 통사론적 구조가 있고, 생각의 논리 형식은 그에 상응하는 심적 표상의 통사론 형식에 수반하며, 통사론적으로 추진되는 인과관계라는 개념에 의존하는 특별한 '계산'이란 의미에서 심적 과정은 계산적이라는 것이다. 일단은 그렇다."
"예를 들어 '뿔이 있다'는 '공간을 차지한다'보다 더 적은 대상에 해당되고, 그래서 (어쩌면 약간 왜곡된) 어떤 의미에서 뿔에 관한 정보는 공간 차지에 관한 정보보다 더 영역 특수적이다."
"예를 들어 나는 헤겔철학의 관념론자들과 칸트철학의 관념론자들, 실증 철학자들과 실용주의자들, 속성 이원론자들과 실체 이원론자들을 그럭저럭 구분할 줄 안다. 그리고 수렵, 채집인이었던 인류의 조상 할머니도 노력만 했다면 그럭저럭 양자를 구분할 줄 알게 되었으리라 장담한다."


이런 저자가 진화심리학자인 스티븐 핑거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그 중에서도 특히 계산주의 마음 이론과 뇌의 모듈성을 비판하는데, 이게 반증이 아니고 그냥 추론이다.
"그 결과 심리학적 다윈론과 실용주의가 장기적인 연합을 맺었고(예를 들어 듀이Dewey[l922]를 보라), 이 모든 것이 우리 계몽적 합리주의자들에겐 섬뜩하기만 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화적' '생물학적' 또는 '과학적' 세계관에는, 인지의 고유한 기능이 옳은 믿음에 대한 고착이 아닌 다른 데 있다고 입증하거나 심지어 암시라도 하는 설명은 전무하다. 그러나 인지의 고유한 기능에 대한 이 특성 규정은 언뜻 보기에 '영역 일반적'이라 할 만하다. 그러므로 코스미디스와 투비는 '인지의 성공이나 실패에 영역 독립적 기준은 전혀 없다'라는 전제를 공짜로 얻어 쓰고 있는 셈이다."
"마음은 대상을 표현할 때 어떤 모듈이 활성화될지를 어떻게 판단하는가라는 '입력 분석' 문제는 단지 '철학적'이 아니라 실제로 실제적인 문제라는 점이다. 이 문제는 실제의 인지과학 연구에서 발생하고 실제의 인지과학자들을 좌절시킨다."
"신종합설은 또한 '인지구조는 진화적 적응의 산물이라는 가설'을 널리 따르고 있으므로 ...... 나의 기본적인 견해로는, 일반적으로 신종합설이 인지에 관하여 내놓는 적응주의 주장들은 믿을 만한 구석이 거의 없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대부분의 과학들은 놀라울 정도로 서로 무관하고, 이 문제에 관해서라면 과학적이든 아니든 대부분의 우발적 진리들도 서로 무관하다."
"내 직관에 의하면 예를 들어 심장의 기능은 그 진화상의 기관들보다는 '만일 심장이 멈추면 나는 죽을 것이다'와 같은 조건법적 서술의 현재적 진리와 더 깊은 관계가 있다. 그런 조건법적 서술을 통해 밝혀지는 진리가 한 기관의 기능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마 일반적일 것이다."
"우리의 뇌는 적어도 큰 기준으로 볼 때 유인원의 뇌와 매우 비슷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적어도 큰 기준으로 볼 때 유인원의 마음과 매우 다르다. 그래서 신경계에 비교적 작은 변화가 일어나도 분명 조상 유인원에게서 우리로 이행할 때 인지능력에는 매우 큰 단절(흔한 표현으로 돌연변이)이 발생했을 것이다. 만일 이 생각이 옳다면, 우리의 인지는 다윈론적 선택이 전前 인류의 행동 표현형에 점진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믿을 이유가 전혀 없다."

앞에서 언급한 구절들을 보면, 인간의 정신이 뇌의 작용이라는 것을 과학적 심리학이 밝혀낸 과정에 대해 저자는 거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저자가 지적으로 게을러서 라기 보다는 철학은 과학과 별개라는 생각에 구속되어 있어서 과학에서의 진전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게 바로 철학이 처한 딜레마이다. 저자는 학문에서의 철학과 과학의 헤게모니 투쟁에 철학 편에 서 있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면 그것을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인지과학자들은 대량 실업 사태를 간신히 면할 듯하다. 물론 연구비를 확보할 수 있다고 항상 가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결론이라고 내세운 게 마치 종교가 진화론을 부정할 때 주로 써 먹는 수법인 다음과 같은 언급이다.
"지금까지 인지과학이 마음에 대하여 발견한 것이라고는 대개가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모른다는 것뿐이다."

이 책은 철학이 자신들 만의 리그를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어떻게 전문가들의 유희를 즐기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출판 당시의 첨단 과학적 연구 결과를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비판하고 있는 이 책에 대한 독서 추천은 '불가'이다.



덧글

  • 맹한 바다사자 2018/12/20 20:36 #

    안녕하세요. 저는 뒤늦게 학업을 준비하며 인지심리를 탐구하는 청년입니다. 괜찮으시다면 배움을 목적해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포더가 사변적 추론 의존으로(검은양님 말씀을 제가 이해하기로는 추론 '일변도'로) 핑커의 계산주의 모델을 비판한다 말씀해주셨는데, 반대로 핑커의 경우에는 그의 저서에서 포더와 달리 과학적 증명을 통해 그의 이론을 논변했다고 보시나요?

    포더는 (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를 읽었으나 독해가 부족해), '정신어Mentalease'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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