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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의, 그 환상의 진화 - 프란츠 부케티츠 독서



이 책은 진화심리학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생물계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기된 진화론이 인간의 문제를 포함하면서 심리학이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인간의 문제도 진화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 진화심리학이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문제, 즉 인간의 정신과 사회성에 관한 것을 진화론으로 설명하는데 주력해왔다. 그 안에는 종교를 포함하는 문화, 의식, 인간의 본성, 도덕체계 등이 포함된다.

서두에서 내가 이 책이 진화심리학의 결정판이라고 한 것은 앞에서 언급한 모든 것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제목에서 보다시피 이 책은 '자유의지'에 관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진화심리학의 결정판이라고 한 것은 저자의 다음과 같은 언급 때문이다.
"인간 정신의 수수께끼는 이미 풀렸다. 나는 이것이 대담한 주장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정신과 의식, 또는 다른 동물들의 의식을 우리가 이미 '완전히' 이해했다거나 언젠가 완전히 이해하게 되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예전에는 형이상학적 사변에만 일임했던 정신 현상을 이미 오래 전부터 자연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가능해졌으며, 우리 뇌에 대한 인식이 성장함에 따라 그러한 현상에 대한 이해도 점점 깊어지고 있다고 주장할 뿐이다."

물론 저자가 저렇게 주장했다고 해서 그게 그대로 인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에릭 드렉슬러의 저서 '창조의 엔진'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1894년 저명한 물리학자 앨버트 마이컬슨Albert A. Michelson은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물리학의 중요한 근본 법칙과 사실들은 모두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너무나 굳건히 확립되어 있기에 새로운 발견으로 현재의 위치에서 밀려나는 일이 생길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 우리는 미래의 발견 대상을 소수 여섯번째 자리에서 찾아봐야 할 것이다.""

1800년대 말에도 과학은 정점에 다다랐다는 선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새로운 발견들이 이어진 것을 보면 저자의 위와 같은 선언도 지나치게 과감한 선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다.
"어떤 진술이 사실에 관한 것(진실이거나 거짓이다)이라 함은 그 진술이 원리적으로, 실험이나 관찰에 의해 반증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저자의 선언은 진화심리학의 수많은 연구 결과들의 종합이며 아직은 반증되지 않았으므로 저자의 선언을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할 수는 없다. 왜 이 책을 진화심리학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지 저자의 언급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저자는 오랫동안 서양 철학을 지배했던 정신-육체 이원론이 허구임을 지적한다.
"'관념론'의 특이한 변형으로서 이원론은 이론적으로 유지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 잘못된 이론이 그랬듯이 서양 사상사에 많은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 그러나 뇌 연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모든 것에 따르면(상호작용주의를 포함한) 뇌와 정신(몸과 마음) 이원론은 진지한 과학적 가설이 아니다."

참고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는 '뇌 연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모든 것'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에 관한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나는 이 주제와 관련된 다른 많은 책에서도 이와 유사한 텍스트를 인용할 수 있었는데- 서양의 사고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견해 즉 인간의 악한 본성은 인간의 문화를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는 견해와 마주한다(헉슬리[다윈의 불독이라고 불린 진화론의 열광적인 옹호자이자, '멋진 신세계'의 저자 헉슬리의 할아버지]를 보라).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와 반대되는 입장, 즉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모든 면에서 선했지만 문명화가 인간을 타락시켰다는 입장은 장 자크 루소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둘 모두 틀린 것이다."
"근본적인 윤리 내지 도덕 철학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우리는 우리가 본성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유롭게 공상하는 능력은 바로 그런 인간 존재에 속하는 것이다. 자유의지에 대한 이념은 문화적 산물이다. 그러나 자유의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것조차 생물학적 기관인 '뇌' 덕택이다."
"도덕 시스템과 이데올로기와 종교는 오히려 우리 본성의 특수한 발현이다. 물론 이것이 우리가 각 개인의 모든 임의적 행동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일 필요는 없다. 이미 이전의 고도 문화들은 분업적이고 위계적인 사회에서 생활하는 데 따른 필요때문에 각각 독립적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 불가피하게 아주 명확한 윤리 규범을 발전시켰다는 렌쉬(1979)의 지적은 옳다."


즉 생물학적 기관인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서의 문화가 현재 우리가 보고있는 인간의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들은 진화론, 진화생물학, 문화진화론, 진화심리학 등의 경로를 통해서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들이다.

이제 이 책의 제목인 자유의지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보자.
"뇌는 자신의 담지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아무리 커다란 오류를 양산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종교적 믿음에 대한 성향이 발달한 이유는 그것이 무엇보다도 사회 집단들의 안정성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신화는 집단에 속한 각각의 구성원들이 다른 구성원들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고 또 극복될 수 없을 듯 보이는 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준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인간에게 전적으로 '유익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누구도 사기꾼이 자신을 악용하도록 해서는 안되며, 단지 사적인 일로 그치도록 해야 한다. 물론 건강한 믿음과 위험한 순진함을 엄격하게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자유의지 이념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통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인간은 매우 복잡한 의식을 갖고 있다. 그 의식은 우리에게 자유롭게 망상하는 것을 허락한다. 물론 이 책에서 제시된 논중에 따르면 자유에 대한 우리의 느낌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결과에 불과하다. 진화가 우리에게 그런 느낌을 갖게 한 이유는 오로지 그것이 우리에게 이득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우리의 의지가 실제로 자유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만일 고슴도치가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아마 그는 적이 다가 올 때 가시를 세우는 것이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른 행동이라고 믿을 것이다. 비록 그가 현실적으로는 어떠한 다른 대안도 갖고 있지 않으며 오직 가시만이 위험한 여우나 개로 부터 보호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만일 엄격한 진화생물학적 의미에서 자유의지라는 환상이 비생산적이라면 그것은 발달하지 않았거나 전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자유의지라는 환상이 비생산적인데도 그것이 발달하기 시작했다면 자연선택은 그것의 담지자를 제거했을 것이다(따라서 오늘날에는 누구도 자유의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자유의지에 대한 생각을 포기하라고 독단적으로 명령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자유의지에 대한 생각이 악용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즉 자유의지는 단순히 우리가 삶을 꾸려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가설에 불과하다.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안심하고 계속 그렇게 믿어도 될 성싶다. 그러나 (더는) 그것을 믿지 않게 된 사람도 낙담하거나 자신을 강제적인 존재로 느낄 필요가 없다."

즉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자유의지'라는 것도 결국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인간의 정신의 영역에 대한 많은 논란들, 예를 들면, 의식, 종교 또는 도덕체계에 관한 논란들도 결국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러한 논란들도 언젠가는 도태되든지 새로운 변이로 진화해 나갈 것이라는 뜻이다.

이 책이 대담한 주장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학술서처럼 부피가 크지 않다. 그것은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많은 결과들을 참고문헌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화심리학에 대한 여러 연구 결과들에 대해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나의 독서 목록에도 문화진화론, 진화심리학에 관한 책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고, 그것들을 모두 읽어본 나로서는 저자의 결론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저자의 주장이 미심쩍은 사람들은 그런 책들을 읽어보는 수고를 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강력 추천 목록에 올려야 마땅하다.